1️⃣1️⃣ 강. 고려(중기 정치~무신 정변)
⭐️ 고려 시대에 문벌은 과거와 음서를 통해 고위 관직을 독점하였다.
⭐️ 인종 때 권력을 독점한 왕실의 외척 이자겸이 척준경과 함께 난을 일으켰다.
⭐️ 묘청은 풍수지리설을 내세워 서경 천도를 주장하였다.
⭐️ 묘청 등 서경파는 고구려 계승 의식이 있었으며, 칭제 건원과 금국 정벌을 주장하였다.
⭐️ 김부식을 중심으로 한 개경파는 신라 계승 의식이 있었으며, 금에 대한 사대를 주장하였다.
⭐️ 묘청 일파는 김부식이 이끄는 관군에 의해 토벌되었다.
⭐️ 신채호는 "조선사연구초"에서 묘경의 서경 천도 운동을 '조선역사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'이라고 평가하였다.
⭐️ 무신에 대한 차별과 의종의 실정을 배경으로 보현원에서 무신 정변이 일어났다.
⭐️ 무신 정변으로 의종은 왕위에서 쫓겨나 거제도로 추방되었다.
⭐️ 무신 정변 직후 무신들의 회의 기구였던 중방이 최고 기구의 역할을 하였다.
⭐️ 최충헌은 이의민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하였다.
⭐️ 최충헌은 국왕에게 봉사 10조를 올려 시정 개혁을 제안하였다.
⭐️ 최충헌은 교정도감을 설치하고 교정별감이 되어 국정 전반을 장악하였다.
⭐️ 최우는 인사 행정 담당 기구로 정방을 설치하였다.
⭐️ 서방은 최우가 무신 정권의 국정 자문을 위해 문인들로 구성한 기구였다.
⭐️ 무신 집권기 경대승이 신변 경호를 위한 사병 조직인 도방을 만들었다.
⭐️ 삼별초는 좌별초, 우별초, 신의군으로 편성된 군대로 최씨 무신 정권의 군사적 기반이었다.
⭐️ 무신 정권에 반발하여 서경 유수인 조위총이 난을 일으켜 정중부 등의 제거를 도모하였다.
⭐️ 무신 정권에 항거하여 동북면 병마사 김보당이 의종의 복위를 도모하며 난을 일으켰다.
⭐️ 무신 집권기에 가혹한 수탈에 저항하여 공주 명학소에서 망이·망소이가 봉기하였다.
⭐️ 무신 집권기에 김사미와 효심이 현재의 경상도 지역에서 난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.
⭐️ 무신 집권기에 개경에서 만적을 비롯하여 노비들이 신분 해방을 도모하였다.
📖 11강 추가 내용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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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️⃣2️⃣ 강. 고려(외교)
⭐️ 정종은 거란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하여 광군을 창설하였다.
⭐️ 거란의 1차 침입 때 서희가 소손녕을 상대로 외교 담판을 벌여 강동 6주를 확보하였다.
⭐️ 강조가 정변을 일으켜 김치양 일파를 제거하고 목종을 폐위하였다.
⭐️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거란군이 침략하여 개경이 함락되자 현종이 나주로 피란하였다.
⭐️ 거란의 2차 침입 때 양규의 활약으로 포로로 잡혀가는 많은 고려인을 구하였다.
⭐️ 강감찬은 강동 6주의 반환 등을 요구하며 침략한 거란군을 귀주에서 크게 격퇴하였다.
⭐️ 고려는 부처의 힘을 빌려 거란의 침입을 막아 내고자 초조대장경을 만들었다.
⭐️ 고려는 건란과 여진의 침입에 대비하여 개경에 나성을 쌓고, 국경 지역에 천리장성을 축조하였다.
⭐️ 숙종 때 윤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신기군, 신보군, 항마군으로 구성된 별무반을 조직하였다.
⭐️ 윤관은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을 정벌하여 동북 9성을 축조하였다.
⭐️ 무신 집권기에 몽골의 침입으로 초조대장경과 황룡사 9층 목탑이 소실되었다.
⭐️ 최씨 무신 정권은 몽골이 침입해 오자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장기 항전에 대비하였다.
⭐️ 몽골의 침입 때 김윤후가 처인성에서 몽골 장수 살리타를 사살하였다.
⭐️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는 고려 정부의 개경 환도에 반대하여 대몽 항쟁을 이어 갔다.
⭐️ 삼별초는 강화도에서 진도, 다시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대몽 항쟁을 펼쳤다.
⭐️ 고려는 부처의 힘을 빌려 몽골의 침입을 막아 내고자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팔만대장경을 간행하였다.
⭐️ 원이 설치한 정동행성은 일본 원정 실패 이후 고려의 내정 간섭에 이용되었다.
⭐️ 원 간섭기에 고려의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은 첨의부, 6부는 4사, 중추원은 밀직사로 격하되었다.
⭐️ 원 간섭기에 권문세족은 최고 의결 기관인 도평의사사를 장악하여 권력을 유지하였다.
⭐️ 원 간섭기에 지배층을 중심으로 변발과 호복이 유행하였다.
⭐️ 원 간섭기에 결혼도감을 통해 공녀가 징발되었다.
⭐️ 공민왕은 인사 행정을 담당하던 정방을 혁파하였다.
⭐️ 공민왕은 기철을 비롯한 친원 세력을 숙청하고, 변발 등 몽골풍을 금지하였다.
⭐️ 공민왕은 격하된 관제를 복구하고, 권문세족을 견제하기 위해 신돈을 등용하여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였다.
⭐️ 공민왕은 고려의 내정을 간섭하던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하였다.
⭐️ 공민왕은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철령 이북의 땅을 수복하였다.
⭐️ 홍건적의 침략으로 공민왕이 안동으로 피신하였는데, 고려군은 개경까지 침입한 홍건적을 몰아냈다.
⭐️ 이성계는 내륙까지 쳐들어와 약탈하던 왜구를 황산에서 무찔렀다.
⭐️ 명이 철령 이북의 땅을 직속령으로 삼으려고 하자 우왕과 최영은 요동 정벌을 위해 이성계를 파견하였다.
⭐️ 이성계는 4불가론을 내세우며 요동 출병에 반대하였다.
⭐️ 강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장악한 이성계와 급진 개혁파 신진 사대부는 과전법을 공포하여 전제를 개혁하였다.
📖 12강 추가 내용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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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️⃣3️⃣ 강. 고려(경제, 사회)
⭐️ 고려 건국 후 태조는 개국 공신에게 공로와 인품에 따라 역분전을 차등 지급하였다.
⭐️ 고려 시대 전시과는 관리에게 전지와 시지를 지급하여 수취의 권리를 행사하게 한 토지 제도이다.
⭐️ 경종 때 마련된 시정 전시과에서는 전·현직 관리에게 관리의 인품과 공복을 기준으로 하여 토지를 지급하였다.
⭐️목종 때 정비된 개정 전시과에서는 관직을 기준으로 전·현직 관리에게 토지를 지급하였다.
⭐️ 문종 때 정비된 경정 전시과에서는 현직 관리에게만 전지와 시지를 지급하였다.
⭐️ 고려의 수취 제도로는 조세, 공납, 역이 있었다.
⭐️ 고려 시대 조세는 토지 대장인 양안을 기준으로 역은 호적을 기준으로 부과되었다.
⭐️ 고려 후기에 남부 일부 지역에서 벼농사에 이앙법(모내기법)이 시행되기 시작하였다.
⭐️ 고려 시대에 들어와 소를 이용한 깊이갈이가 일반화되었다.
⭐️ 고려 후기에 이암이 원으로부터 화북 지방의 농법을 정리한 농상집요를 들여왔다.
⭐️ 고려 후기에 문익점이 원으로부터 목화씨를 들여와 재배하기 시작했다.
⭐️ 고려 시대에 예성강 하구의 울산항에서 송, 아라비아 상인 등과 국제 무역이 이루어졌다.
⭐️ 고려 정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주화인 건원중보와 은병(활구), 해동통보 등을 발행하여 화폐의 통용을 추진하였다.
⭐️ 고려 시대에 수도 개경의 시전을 감독하기 위해 경시서가 설치되었다.
⭐️ 고려 정부는 물가 조절을 위해 상평창을 설치하였다.
⭐️ 고려 시대에 서적점, 다점 등의 관영 상점이 운영되었다.
⭐️ 고려 전기에는 관영 수공업과 소 수공업이 주로 이루어졌으나 후기에는 민영 수공업과 사원 수공업이 발달하였다.
⭐️ 백정은 고려 시대에는 일반 백성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조선 시대에는 주로 도살업에 종사하는 천민을 이르는 말이었다.
⭐️ 고려 시대에 천민의 대부분은 노비였으며, 이들은 매매·상속·증여의 대상이 되었다.
⭐️ 고려 시대에 향·부곡·소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신분이 양민이었으나 거주와 세금 등에서 차별을 받았다.
⭐️ 향도는 매향 활동 등 각종 불교 행사를 주관하였다가 상장제례를 담당하는 마을 공동 조직으로 변화하였다.
⭐️ 고려 태조가 빈민 구제를 위해 흑창을 설치하였는데 이는 성종 때 의창으로 이름이 바뀌었다.
⭐️ 고려의 대표적인 구휼 기관인 의창은 흉년에 빈민에게 양식이나 종자 등을 빌려주었는데 이는 조선 시대까지 이어졌다.
⭐️ 고려 정부는 개경의 동쪽과 서쪽에 동·서 대비원을 두어 환자를 치료하였다.
⭐️ 구급도감과 구제도감은 재해가 발생하였을 때 설치된 고려의 임시 기구였다.
⭐️ 고려 시대에서 서민의 질병 치료 기관인 혜민국에서 병자에게 의약품을 제공하였다.
⭐️ 고려 시대에 기금을 모아 그 이자로 빈민을 도와주는 제위보가 운영되었다.
⭐️ 고려 시대에는 자녀에게 재산을 균분 상속하는 일이 많았다.
⭐️ 고려 시대에는 여성의 재가가 비교적 자유로웠으며 재가한 여성의 자녀도 사회적 차별을 받지 않았다.
⭐️ 고려 시대에는 사위와 외손자에게도 음서의 혜택이 주어졌다.
📖 13강 추가 내용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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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️⃣4️⃣ 강. 고려(문화 1)
⭐️ 고려 시대에 유학 교육을진흥하기 위해 중앙에는 국자감, 지방에는 향교를 설립하였다.
⭐️ 국자감에는 유학부 외에 율학, 서학, 산학 등의 기술학부가 있었다.
⭐️ 고려의 과거는 문관을 뽑는 명경과와 제술과, 기술과를 뽑는 잡과, 승려를 대상으로 하는 승과가 있었다.
⭐️ 고려 시대에 과거 시험에서 무과는 거의 시행되지 않았다.
⭐️ 고려 시대에는 과거 감독관인 지공거와 합격자 사이에 좌주와 문생 관계가 형성되었다.
⭐️ 최충은 9재 학당을 세워 유학 교육을 실시하였는데 최충의 시호를 따 문헌공도라고 불렸다.
⭐️ 고려 중기에는 사립 교육 기관인 사학 12도가 융성하였다.
⭐️ 고려는 예종 때 국자감에 전문 강좌인 7재를 두어 운영하였다.
⭐️고려는 관학 진흥을 위해 양현고를 설치하여 장학 기금을 마련하였다.
⭐️ 안향은 원으로부터 성리학을 들여와 고려에 최초로 소개하였다.
⭐️ 충선왕은 원의 연경에 만권당을 설치하여 고려와 원 학자들의 교류를 확대하였다.
⭐️ 이제현은 만권당에서 원의 학자들과 교류하였다.
⭐️ 이제현은 역옹패설, 사략 등을 저술하였다.
⭐️ 김부식은 왕명으로 유교 사관에 입각하여 삼국사기를 저술하였다.
⭐️ 삼국사기는 기전체 형식으로 편찬되었으며, 현존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서이다.
⭐️ 각훈은 승려들의 전기를 기록한 해동고승전을 남겼다.
⭐️ 이규보는 고구려 건국 시조의 일대기를 서사시 형태로 서술한 동명왕편을 저술하였다.
⭐️ 고려 후기에 일연은 불교사를 중심으로 민간 설화를 기록한 삼국유사를 저술하였다.
⭐️ 이승휴가 쓴 제왕운기는 고조선부터 충렬왕 때까지의 역사를 서사시 형태로 정리한 역사서이다.
⭐️ 삼국유사와 제왕운기는 고조선을 우리 역사의 시작으로 보고 있으며, 단군의 건국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.
⭐️ 태조는 훈요 10조에서 불교를 중시하고 관등회와 팔관회 같은 행사를 소홀히 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.
⭐️ 광종 때 균여는 향가 형태의 보현십원가를 지어 불교 교리를 대중에게 전파하였다.
⭐️ 의천은 이론의 연마와 실천을 함께 강조하는 교관겸수를 제창하였다.
⭐️ 의천은 불교 통합을 위해 국청사를 중심으로 해동 천태종을 창시하였다.
⭐️ 의천은 교장도감을 설치하여 불교 경전에 대한 주석서를 편찬하였다.
⭐️ 지눌은 수선사 결사를 제창하여 불교계를 개혁하고자 하였다.
⭐️ 지눌은 돈오점수를 주장하며 수행 방법으로 정혜쌍수를 내세웠다.
⭐️ 혜심은 지눌의 제자로 선문염송집을 편찬하고 유·불 일치설을 주장하였다.
⭐️ 요세는 법화 신앙을 바탕으로 백련사 결사를 주도하였다.
⭐️ 고려 중기 이후 한양을 중시하는 남경 길지설이 대두되었다.
📖 14강 추가 내용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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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️⃣5️⃣ 강. 고려(문화 2)
⭐️ 고려 초기의 대표적인 철불로 하남 하사창동 철조 석가여래 좌상이 있다.
⭐️ 고려 초기에 호족의 영향으로 각지에서 지방색이 강한 개성 있는 거대 불상들이 제작되었다.
⭐️ 고려 초기의 대표적인 거대 불상으로는 논산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, 안동 이천동 마애 여래 입상 등을 들 수 있다.
⭐️ 영주 부석사 소조 여래 좌상은 신라 양식을 계승한 고려의 불상이다.
⭐️ 고려 후기에 아미타래영도, 수월관음도 등의 불화가 많이 그려졌다.
⭐️ 원의 영향을 받은 수렵도인 천산대렵도는 공민왕이 그렸다고 전해진다.
⭐️ 고려 전기에 다각 다층탑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대표적으로 평창 월정사 8각 9층 석탑을 들 수 있다.
⭐️ 고려 후기에 개성 경천사지 10층 석탑이 원의 영향을 받아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.
⭐️ 개성 경천사지 10층 석탑은 조선 시대 서울 원각사지 10층 석탑에 영향을 주었으며, 현재 국립 중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.
⭐️ 고려 시대에 청자가 발달하였는데 전기에는 무늬가 없는 순청자, 후기에는 독창적 기법의 상감 청자가 많이 제작되었다.
⭐️ 고려 시대 금속 공예에서는 금속 그릇 표면에 무늬를 새기고 은실을 채워 넣어 장식하는 은입사 기술이 발달하였다.
⭐️ 고려 시대에 조개껍질을 얇게 간 자개를 옻칠한 나무에 붙여 장식하는 나전 칠기가 많이 만들어졌다.
⭐️ 고려의 초조대장경은 거란을, 팔만대장경은 몽골을 격퇴하려는 염원을 담아 만들어졌다.
⭐️ 팔만대장경판은 현재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고,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.
⭐️ 고려 시대에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 인쇄본인 상정고금예문이 인쇄되었으나 현재 남아 있지 않다.
⭐️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은 고려 시대에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되었다.
⭐️ 직지심체요절은 현재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,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.
⭐️ 주심포 양식은 지붕을 받치는 공포를 기둥 뒤에만 두는 구조이다.
⭐️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팔작지붕의 주심포 양식 건물로, 구조상 안정감을 주기 위해 배흘림기둥으로 되어 있다.
⭐️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, 예산 수덕사 대웅전, 안동 봉정사 극락전은 고려 시대 대표적인 주심포 양식의 건물이다.
⭐️ 안동 봉정사 극락전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.
⭐️ 고려 후기에 공포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 나타났다.
⭐️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다포 양식의 건축물로, 사리원 성불사 응진전을 들 수 있다.
⭐️ 고려 시대 천체와 기상 관측을 담당하는 관청으로 사천대가 설치되었다.
⭐️ 고려는 원 간섭기에 들어오면서 원의 역법인 수시력을 사용하였다.
⭐️ 고려 시대에 현재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의학서인 향약구급방이 간행되었다.
⭐️ 고려 말 우왕 때 최무선의 건의로 화약과 화포 제작을 맡은 화통도감이 설치되었다.
⭐️ 최무선은 화포를 이용에 진포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하였다.
📖 15강 추가 내용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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