1️⃣6️⃣ 강. 조선 전기(정치)
⭐️ 고려 말에 온건 개혁파 신진 사대부의 대표적 인물인 정몽주은 이방원 세력에 의해 피살되었다.
⭐️ 정도전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을 주도하였으며, 도성 축조를 계획하고 경복궁과 주요 전각의 이름을 지었다.
⭐️ 정도전은 경제문감, 조선경국전을 저술하여 재상 중심의 정치를 주장하였다.
⭐️ 정도전은 불씨잡변을 지어 불교를 비판하였다.
⭐️ 태종 이방원은 두 차례 왕자의 난을 통해 반대파를 제거하였다.
⭐️ 태종은 공신과 왕족의 사병을 혁파하여 왕의 군사권을 강화하였다.
⭐️ 태종은 의정부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6조 직계제를 실시하여 왕권을 강화하였다.
⭐️ 태종은 호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백성의 유망을 막기 위해 호패법을 실시하였다.
⭐️ 태종 때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기 위해 신문고가 설치되었다.
⭐️ 태종은 문하부 낭사를 사간원으로 독립시켰다.
⭐️ 세종은 최윤덕과 김종서를 파견하여 여진을 정벌하고 4군 6진을 설치하였다.
⭐️세종은 6조의 정책들을 최고 회의 기관인 의정부에서 검토하여 왕에게 보고하도록 하는 의정부 서사제를 시행하였다.
⭐️ 세종은 학문 연구 기관인 집현전을 설치하였다.
⭐️ 계유정난을 통해 정권을 장학한 세조는 6조 직계제를 시행하고 집현전을 폐지하였다.
⭐️ 세조는 직전법을 실시하여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권을 지급하였다.
⭐️ 세조는 함길도 토착 세력이 일으킨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였다.
⭐️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은 이·호·예·병·형·공전의 6전 체제로 구성되었다.
⭐️ 세조 때 편찬을 시작한 경국대전은 성종 때 완성되어 국가 통치 규범이 마련되었다.
⭐️ 성종은 폐지된 집현전을 계승한 홍문관을 설치하였다.
⭐️ 성종 때 국가의 의례를 정비한 국조오례의가 완성되었다.
⭐️ 무오사화는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빌미가 되어 발생하였다.
⭐️ 갑자사화는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 사사 사건이 빌미가 되어 발생하였다.
⭐️ 조광조는 중종에 의해 발탁되어 소격서 폐지를 건의하고 위훈 삭제를 주장하는 등 개혁 정치를 추진하였다.
⭐️ 조광조는 중종에게 인재 등용을 위해 현량과 실시를 건의하였다.
⭐️ 중종 때 중용된 조광조는 소학의 보급과 공납의 개선을 주장하였다.
⭐️ 위훈 삭제에 대해 훈구 세력이 반발하여 기묘사화가 일어나 조광조 등이 제거되었다.
⭐️ 명종 때 외척 윤원형과 윤임 간의 권력 다툼으로 을사사화가 발생하였다.
⭐️ 선조 때 이조전랑 임명 등을 둘러싸고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었다.
⭐️ 동인은 조직, 이황의 학문을 계승하였고, 서인은 이이와 성혼의 문인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.
⭐️ 사화의 피해로 중앙 정계에서 밀려나 지방으로 낙향한 사림은 향촌에서 유향소를 통해 여론을 형성하였다.
📖 16강 추가 내용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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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️⃣7️⃣ 강. 조선 전기(외교)
⭐️ 의정부는 재상들의 합의로 운영되었으며, 정책을 심의·결정하여 국정을 총괄하였다.
⭐️ 의금부는 국왕 직속의 특별 사법 기구로, 반역죄와 강상죄 등 중범죄를 다스렸다.
⭐️ 왕명의 출납을 맡은 왕의 비서 기관인 승정원에는 도승지를 비롯해 6명의 승지가 있었다.
⭐️ 조선 시대에 언론 기능을 담당한 사헌부, 사간원, 홍문관을 합쳐 삼사라고 하였다.
⭐️ 사헌부는 관리를 감찰하고 자격을 심사하는 기관이었다.
⭐️ 사간원은 정책에 대한 간쟁을 담당하는 기관이었다.
⭐️ 조선 시대에 대간은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리로 구성되었으며, 5품 이하 관리의 임명 과정에서 서경권을 행사하였다.
⭐️ 홍문관은 집현전을 계승하여 성종 때 설치된 학술·언론 기관이었다.
⭐️ 홍문관은 옥당이라고도 불리며, 왕에게 경서와 사서를 강론하는 경연을 주관하였다.
⭐️ 조선 시대에 수도의 행정과 치안을 담당한 관청은 한성부였다.
⭐️ 조선 시대에 실록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한 기관은 춘추관이었다.
⭐️ 조선 시대 최고 교육 기관인 성균관에 대사성을 중심으로 좨주, 직강 등의 관직을 두었다.
⭐️ 조선 시대에 장례원은 노비의 호적과 소송에 관한 일을 관장하였다.
⭐️ 조선은 전국을 8도로 나누었고 각 도에 관찰사를 파견하였다.
⭐️ 8도 아래 부·목·군·현에 파견된 수령은 지방의 행정·사법·군사권을 행사하였다.
⭐️ 조선 시대에 수령의 의무로 수령 7사가 있었다.
⭐️ 고려 시대 특수 행정 구역인 향·부곡·소는 조선 시대에 들어와 소멸되었다.
⭐️ 조선 시대에 각 지방의 향리는 수령을 보좌하며 행정 실무를 담당하는 아전의 역할을 하였다.
⭐️ 조선 시대에 향리는 단안이라는 명부에 등재되었다.
⭐️ 조선 시대에 과거는 문신을 선발하는 문과, 무신을 선발하는 무과, 기술관을 선발하는 잡과가 치러졌다.
⭐️ 조선 시대에 과거에는 양인 이상이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었으나, 문과의 경우 서얼과 재가한 여성의 자손은 응시할 수 없었다.
⭐️ 조선 시대에 2품 이상 고위 관료의 자제는 시험 없이 관직에 나갈 수 있는 문음이 있었다.
⭐️ 조선 시대에 기술직 하급 관리들은 과거와는 별도로 취재라는 시험을 통해 선발되었다.
⭐️ 조선 전기에 중앙군으로 궁궐과 도성의 수비를 담당한 5위를 두었다.
⭐️ 조선 시대의 군사 조직은 양인 개별과 농병 일치의 원칙을 적용하여 의무병으로 구성되었다.
⭐️ 조선은 세조 이후 지역 방어 체제로 진관 체제를 실시하였다.
⭐️ 조선 전기에 잡색군은 유사시에 향토방위를 맡는 예비군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.
📖 17강 추가 내용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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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️⃣8️⃣ 강. 조선 전기(외교)
⭐️ 조선의 외교 정책은 명에 대해서는 사대를, 여진, 일본, 유구 등에 대해서는 교린을 표방하였다.
⭐️ 조선 초에 태조와 정도전이 요동 정벌을 주장하여 명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.
⭐️ 세종 때 김종서가 여진을 몰아내고 6진을 설치하였다.
⭐️ 4군 6진 개척 이후 이 지역에 대해 사민 정책과 토관 제도가 실시되었다.
⭐️ 조선은 한성에 여진 사신을 접대하기 위한 북평관을 개설하여 조공 무역을 허용하였다.
⭐️ 조선은 국경 도시인 경성과 경원에 무역소를 설치하여 여진을 회유하였다.
⭐️ 세종 때 이종무가 왜구의 근거지인 쓰시마섬을 정벌하였다.
⭐️ 세종 때 3포를 개항하고 계해약조를 체결하여 제한된 범위의 무역을 허용하였다.
⭐️ 중종 때 외적의 침입 등 군사적인 사안에 대비하기 위한 임시 기구로 비변사가 설치되었다.
⭐️ 비변사는 명종 때 을묘왜변을 계기로 상설기구가 되었다.
⭐️ 일본군에게 부산진 등이 함락되자 신립은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항전하였다.
⭐️ 임진왜란 3대첩은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, 김시민의 진주 대첩, 권율의 행주 대첩이다.
⭐️ 임진왜란 당시 조·명 연합군이 평양성을 탈환하였다.
⭐️ 이순신이 명량에서 왜의 수군을 대파하였다.
⭐️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 정책을 추진하였다.
⭐️ 광해군 때 후금과 전쟁 중이던 명의 요청에 따랄 강홍립이 이끄는 부대가 파병되었다.
⭐️ 임진왜란 이후 일본의 요청으로 공식적인 외교 사절인 통신사가 다시 파견되었다.
⭐️ 광해군은 인조반정이 일어나 폐위되었다.
⭐️ 인조반정으로 서인이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.
⭐️ 인조와 서인 정권은 외교적으로 친명배금 정책을 펼쳤다.
⭐️ 후금은 광해군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정묘호란을 일으켰다.
⭐️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조선 왕실은 강화도로 피란하였다.
⭐️ 후금은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조선에 군신관계를 강요하며 조선을 침량해 병자호란을 일으켰다.
⭐️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다.
⭐️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함으로써 병자호란이 끝났다.
📖 18강 추가 내용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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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️⃣9️⃣ 강. 조선 전기(경제, 사회)
⭐️ 과전법의 지급 대상 토지는 원천적으로 경기 지역에 한정되었다.
⭐️ 세조 때 직전법을 실시하여 현직 관리에게만 수조지를 지급하였다.
⭐️ 직전법이 시행되면서 수신전와 휼양전 등의 명목으로 세습되는 토지가 폐지되었다.
⭐️ 성종 때 국가에서 조세를 거두어 관리들에게 나누어 주는 관수관급제가 시행되었다.
⭐️ 조선 중기에 국가 재정이 악화되어 관리에게 과전 대신 녹봉을 지급하였다.
⭐️ 세종 때 풍흉에 따라 9등급으로 나누어 전세를 부과하는 연분 9등법이 시행되었다.
⭐️ 세종 때 토지의 비옥도를 6등급으로 나누는 전분 6등법이 시행되었다.
⭐️ 군역의 요역화로 다른 사람에게 대가를 주고 군역을 대신 지게 하는 대립과 포를 내고 역을 면제받는 방군수포제가 성행하였다.
⭐️ 명종 때 외척의 정권 장악 등으로 사회 혼란이 심화되어 임꺽정과 같은 도적이 나타나기도 하였다.
⭐️ 조선 시대에 신분은 양인이지만 하는 일이 고되어 천시받는 신량역천이라는 계층이 존재하였다.
⭐️ 조선 시대의 백정은 고려 시대와 달리 도축업에 종사하는 천민 계층을 일컫는 말이었다.
⭐️ 조선 시대에 천민의 대다수는 노비로 매매, 상속, 증여의 대상이 되었다.
⭐️ 조선 시대에 노비는 장례원을 통해 국가의 관리를 받았다.
⭐️ 조선 시대에 농민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해 춘대추납 제도인 의창과 물가 조절 기구인 상평창을 운영하였다.
⭐️ 명종 때 구황촬요를 간행하여 기근에 대비하였다.
⭐️ 조선 시대에 혜민국, 제생원, 동·서 활인서 등 백성을 위한 의료 기관이 있었다.
⭐️ 태종 때 백성의 유망을 막기 위해 호패법이 처음 실시되었다.
⭐️ 조선 시대에 농민을 통제하기 위한 정책으로 다섯 가구를 하나로 묶어 연대 책임을 지게 하는 오가작통법이 시행되었다.
⭐️ 조선 시대에 향도는 농민 공동체 조직으로 향촌의 상장제례를 상부상조하였다.
⭐️ 조선 시대에 두레는 농민들로 구성된 공동 노동의 작업 공동체였다.
⭐️ 조선 시대에 향촌의 자치 규약인 향약은 풍속 교화와 향촌 사회의 질서 유지에 기여하였다.
⭐️ 향약은 지방 호족이 주요 직임을 맡았다.
⭐️ 유향소는 향촌의 여론을 형성하고 수령을 보좌하는 자문 기관이었다.
⭐️ 유향소는 좌수와 별감을 선발하여 운영되었다.
⭐️ 조선 시대에는 중앙에 경재소를 설치하여 유향소를 통제하였다.
⭐️ 서원은 학문 연구과 선현 제사를 담당한 사립 교육 기관으로 지방 사림의 지위 강화에 기여하였다.
📖 19강 추가 내용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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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️⃣0️⃣ 강. 조선 전기(문화 1)
⭐️ 성균관은 조선 시대 최고 관립 교육 기관이며, 소과 합격자인 생원과 진사에게 입학 자격을 부여하였다.
⭐️ 성균관은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과 교육을 하는 명륜당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.
⭐️ 한성에는 중등 교육 기관으로 4부 학당을 두어 유학 경전을 교육하였다.
⭐️ 전국의 부·목·군·현에 하나씩 설립된 향교에는 중앙에서 교수나 훈도가 파견되었다.
⭐️ 서원은 지방의 사림 세력이 주로 설립하였으며, 교육과 함께 선현에 제사를 지냈다.
⭐️ 이황은 군주의 도를 도식으로 설명한 성학십도를 저술하였다.
⭐️ 이황은 기대승과 사단칠정 논쟁을 전개하였다.
⭐️ 이황은 예약 향약을 시행하여 향촌 교화를 위해 노력하였다.
⭐️ 이이는 성학집요를 저술하여 군주가 수양해야 할 덕목을 제시하였다.
⭐️ 이이는 동호문답을 저술하여 다양한 개혁 방안을 제시하였다.
⭐️ 이이는 방납의 폐단을 줄이고자 수미법을 주장하였다.
⭐️ 이이는 해주 향약을 시행하여 향촌 교화를 위해 노력하였따.
⭐️ 조선은 숭유억불 정책의 하나로 승려에게 허가증을 발급하는 도첩제를 시행하였다.
⭐️ 문종 대 고려의 역사를 기전체로 정리한 고려사와 편년체로 정리한 고려사절요가 편찬되었다.
⭐️ 조선왕조실록은 사초, 시정기를 바탕으로 실록청에서 편찬하였다.
⭐️ 성종 때 서거정 등이 고조선부터 고려까지의 역사를 편년체로 서술한 동국통감을 편찬하였다.
⭐️ 성종 때 서거정이 역대 문학 작품을 선별하여 동문선을 편찬하였다.
⭐️ 태종 때 동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세계 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만들어졌다.
⭐️ 성종 때 각 도의 지리, 풍속 등이 수록된 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되었다.
⭐️ 경국대전은 세조 때 편찬 작업이 시작되어 성종 때 완성된 조선 왕조의 기본 법전이다.
⭐️ 세종 때 충신, 효자, 열녀의 이야기를 글과 그림으로 구성한 삼강행실도가 편찬되었다.
⭐️ 성종 때 성현 등이 음악 이론 등을 집대성한 악학궤범이 간행되었다.
📖 20강 추가 내용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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